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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Vietnam Veterans Association Korea.

울산지부 북구지회 다부동전적지 순례

박용수(울산 남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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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북구지회(지회장 신진호)는 2022년 10월 20일 오전10시 회원 80명이 울산 출발 칠곡 6.25 다부동 전적지 순례를하였다.

 

다부동 전투는 1950년  6월 25, 전쟁을 일으킨 북한군은 파죽지세로 몰아쳤다. 국군을 연이어 물리치고 전쟁 발발 3일 만인6월 28일에 서울을 점령했다. 이후 7월 5일에는 오산전투에서 미군을 격파하였고 7월 24일에는 대전, 7월말 목포와 진주를 함락시켰다.

 

결국 7월말, 아군은 영덕·안동·상주·진주를 잇는 선까지 밀리고 말았다. 이제 남은 지역은 대구와 부산뿐, 국토의 5%에 불과했다.



전쟁을 일으킨 김일성은 그 해 8월 15일 부산에서 통일기념식을 갖겠다고 호언했고, 여의치 않자 대구 점령의 날로 못박고 총공세에 나섰다.



대구마저 빼앗기면 한반도에는 더 이상 전쟁을 치를 수 있는 지리적인 공간조차 남지 않는 상황이었다. 결국 한미연합군을 지휘하던 미8군사령관 월턴 워커는 중대한 결단을 내려야 했다.

 

8월 1, 워커 사령관은 낙동강과 그 상류 동북부의 산악

지대를 잇는 최후의 방어선을 구축한다. 이른바낙동강 방어선이었다. 낙동강 방어선의 핵심이 바로 칠곡이었다.

 

칠곡 왜관을 거점으로 동북쪽은 국군이, 서남쪽은 미군이 맡았다.



최후의 배수진인 만큼 전투는 치열했다. 가장 치열했던 곳이 왜관 동북쪽 다부동이었다. 다부동은 대구로 가는 길목으로 전략적 요충지였다. 이곳이 뚫리면 나라의 운명을 가늠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북한군은 낙동강을 건너고 다부동을 넘어 이곳에서20떨어진 대구를 삼키려 했다. 적의 주력부대가 칠곡 다부동에 집중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이날 신진호 지회장은 6.25 국가유공자님의 피와 땀으로 바람 앞에 등불처럼 흔들리는 대한민국을 지킨 영웅들이라고 말하고 고귀한 희생정신을 꼭 기억하고 이어받자고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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