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수기

월맹정규군 매복에 걸린 맹호

박태준 0 3,030
1971년 4월 22일 맹호 16호 작전 개시와 동시 우리 1연대 5중대는 푸캇 함몬드 베이스에서 헬기로 혼쩨산 정상에 오전 일찍 랜딩 하였습니다.
헬기에서 내리자마자 주위를 보니 그 깊은 산속에 사람이 다니는 흔적과 길이 반질반질 하였습니다.

분위기가 약간 이상함을 느끼면서 중대장의 지시에 따라 훈련 받은대로 작전이 시작되었습니다.
나는 민사병으로 중대 본부 소속이었습니다. 중대장의 지시로 2소대(로기억)가 선두로 두번째 봉우리를 향해 하향으로 전진 해나갔습니다.

출발한지 채 10-15분도 되지않아 수없는 총성과 수류탄 폭발음 그리고 알수없는 폭음들이 산속을 진동하였습니다.
중대장은 급히 무전으로 연락 하여 상황파악을 할려고 하였으나 무전응답이 없었습니다.
대략 거리는 정상으로 부터 6-7십메타 정도. 그래서 중대장이 나와 중대 무전병을 단독군장으로 현지로 가서 상황파악 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즉시 시킨대로 하향길로 내려가니 얼마지나지않아 2소대가 사망자와 부상자가 즐비하고 소대장은 온지 얼마 안된 신임이라서 그런지
소대 무전병 시체옆에  총도 놓치고 엎드려 있었으며 지휘도 안되고 아비규환 상황 있었습니다.
첫정상과 둘째봉우리의 저점에 앞에 간 소대원의 살려달라는소리 소대장 부르는소리(아마 부상당한 병사) 아무것도 모르고 나도 불쑥 들어갔는데 적의 매복에 걸린것이었습니다.

나는 큰나무를 방패삼아 소대장과 1-2메타 정도 거리에서 소대장을보니 소대장은 부상을 당하지도 않았습니다.
무전병은 적탄통(B-40)으로 머리를 맞았는지 머리가 없고 목에서 피만 불룩불룩 나왔으며 중대장의 부르는소라가 무전기에서 연신 들렸습니다.
그리고 적으로 부터 사격이 계속 날아왔습니다.

적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보다 높은위치의 적쪽으로 연발 사격을 가하면서 소대장님 하고 불렀습니다.
소대장은 그때서야 무전병이 깔고 있는  피묻운은 자기총으로 윗쪽을 향해 사격을 하는데 월맹군의 정조준인듯한 총이 따닥 하면서 몇발 날아왔는데 쓰러졌습니다.

죽은줄 알았는데 1-2분후 눈을뜨며 나를 쳐다 보는것이었습니다. 나는  나무 방패를 벗어날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소대장이 나쪽으로 움질일려고 하다가 다시 적으로 부터 사격을 받아 다시 엎어졌습니다.
그리고 경남 사천출신 오영현이 M72로 적쪽을 향해 발사직전 적의 정조준인듯한 한발이 목을 관통 사망.

그리고 조금후 소대장이 다시 눈을 휘둥그래 하면서 나를 쳐다 보길래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나도 죽겠다고 느껴져서
무전병에게 내 총을 주고 소대장과 같이 빠지기로 하고 순간적으로 소대장을 움켜잡고 정상능선이 아닌 좌옆으로 삽시간에 빠져 우회를 하였습니다.
조금가니 과거 포탄구멍 움푹한데가 있어 그리로 들어가니 안전지대가 되었습니다.
우선 압박붕대로 지혈하고 확인하니 하복부와 허벅지부분등 4-5발로 기억됩니다.

그분 명이 깁니다.
우선 땀을 팥죽같이 많이 흘리고 나보고 물 달라는것을 수통을 보이면서 총맞고 물먹으면 죽는다고 하니 담배만 달래길래
씨레이션 담배 한개비를 불붙여 건네 주었습니다. 그후 안전상황으로 되어 무전병과 내가 교대로 업고 중대본부도착 헬기로 후송하였습니다.
그뒤 살아난 전우들이 106 후송병원 병문안 가니(나는 다른일로 못감) 다리 둘 절단하고 한국 대구 군병원으로 후송간다고 하며
나보고 살려줘서 고맙다는말 전하라는것이 마지막입니다
그리고 그 전투에서 소대마다 돌아 가면서 여러차례 공격했으나 피해만 계속보고 100메타도 전진 못해보고 20여일 동안 있었습니다.
그와중에 적 특공대로부터 어느날밤 새벽3시경 공격받아 많은 피해를 보았으며 적군과 석여서 힘든 밤도 보내고,
수많은 항공폭격과 아군 포라는 포는 다 날아 오는것 같던데 아군 포공격이 정상에 있는 우리 조그만 지점외 근접  포격을 하니
아군 포에 더 공포감을 많이 가졌습나다. 그리고 실제 어느날 아침 해뜰무렵105 미리 곡사포가 우리한데 날아와 여러명이 사망하였습니다

혼쩨산 첫정상은 우리가, 두번째 봉우리는 월맹군 그곳에 낮이면 항공기 폭격 밤이면 곡사포 포격 그래도 동굴로 방패삼아 끄덕도 안하고 
우리를 무척 괴롭혔습니다. 우리중대 한기수, 김상대 두 시체를 회수 못해 회수작전 하다가도 많이 당했습니다

작전중 시체 수송이 안되어 마지막 까지 쌓아두고 있으니 일찍간 전우는 물 다빠지고 가볍고,
헬기가 보급올때 실어 보낼려는데 왜 그런지 실어 주지를 않아서 마지막까지 두고 있다가
106미리 탄박스로 뚜껑없는 관을 야전삽으로 만들어 두명씩 넣어 헬기에 매달아 보내고 밑에서 대롱대롱 달려가는 전우의 주검을 보고 많이도 울었지요

그리고 다른 중대가 우리와 합류하면서 교전이 종식되었는데 최초의 헬기에 이희성 사단장의 이름으로 전사자를 위한 조그마한 화환과 생존자를위한 화환, 명태(북어)몇마리 소주몇병이 왔고, 아직도 기억하기를 전사자들 에게는\"이곳에 산화한 5중대 용사에게 삼가 조의를 표함\",그리고 생존자에게\"5중대 용사에게 경의를 표함\"이라는 글과함께 보내왔습니다. 참 눈물겨웠습니다
작전후 알게된 상황이지만 그곳 계곡이 월맹정규군 노란별(Sao Vang)사단 18 연대가 주둔하고, 맹호지역인 빈딩성 베트공본부(도청소재지) 그리고 베트공 병원이 있었다고 뒷날 전해 들었습니다 
전투는 승리만 있는것이 아니고 힘든상황도 있습디다
전사한 전우사진
손든 미군 오른쪽 앞이 본인, 미군과 본인사이가 전사한 최달림, 본인과 철모쓴 전우 사이뒷편이 전사한 한기수 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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