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수기

참전기<19>68년 구정공세(상)

최원일 0 2,397
피융 ~ 꽝,  피융 ~ 꽝, ........
비상이다 !  비상이다 !   전원 비상... 비상...
조용하던 내무반안이 순식간에 요란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쿠 ~ 웅, 쿠 ~ 웅... 계속 쏘아대는 아군 포소리 사이사이에 처음들어보는 다른 포소리가 끼어들었다. 소리만 듣고 적의 공세임을 직감한 우리는 즉시 비상태세에 돌입했다.
1968년 1월 31일 월남전 사상 가장 치열한 전투로 기록되는 구정대공세가 터진것이다. 그날은 음력설날이었다. 월남 국민들은 지금의 우리와 마찬가지로 음력설을 최고의 명절로 친다.
60년대 당시 한국은 신정때 3일간 쉬고 이중과세라 해서 구정땐 정상근무를 했다.
이런관계로 최대명절을 맞아 남-북 월남은 공식적으로 휴전한다고 약속했다. 그랬는데 북쪽 월맹이 이를 무시하고 공격에 나선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구정전날밤, 바로 섣달 그믐날인 1월30일 야간에 공습이 시작됐다. 월맹군과 그들의 지시를 받는 공산분자들인 민족해방전선 (베트공)은 전국에 깔려있는 자기들의 적을 상대로 대공세를 취한 것.
월남전선 각지에 산재해 있는 자유월남정부군은 물론 공격대상이다. 또한 그들을 지원하고  도와서  자유와 정의와 민주주의를 지키며 양민을 보호하는데 앞장선 미군과 한국군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구정전날밤 연합군의 주둔지를 한꺼번에 공격해 치열한 전투가 며칠째 계속된것이다.
내가 속한 백마부대사렬부 본부중대는 몇개월전 적의 포탄공세를 받아 큰피해를 입은 경험이 있다. 이런 연유로 장병들이 금새 포소리만 듣고도 적의공습임을 간파하고 대응태세에 돌입한 것이다.
중대연락병인 나는  내무반원들이 자기 개인호로 뛰어 가는걸 확인하고 실내 전등을 모두 끈후 즉시 중대본부로 달려가 보고한후 다음 명령을 기다렸다.
적의 포공습이 있고, 우리중대원들이 개인참호로 뛰고, 연락병인 내가 소등후 중대본부로 가서 보고한 시간은 불과 2~3분 안짝이었다.
그제서야 사단사령부에서는  적의 대공세가 시작돼 전부대에 비상을 선포한다는 명령이 하달됐다.그 시간이후 전투는 월남 전지역에서 여러날 계속됐다.
그날, 구정 전날밤 우리는 얼마나 재미있는 영화가 상영될 지 무척 기대가 컸다.
매 주 두차례 저녁 식사후엔 부대식당 앞에서 영화를 상영했다.  상영시간을 기다리자면 입대전 사회에서 애인 만나는 순간을 기다리던 때처럼 설레이는 마음이 들곤했다. 한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전쟁터에서 생활하는 군인들로서는 당연한 설레임인지도 모른다.
68년 구정공세가 시작되기 직전 우리는 명절 전날인만큼 특별히 선택한 아주 재미있는 영화일 거라는 기대가 컷다. 그래서 설레는 마음으로 저녁이 되기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일과를 잘 마치고 저녁식사를 한 후 오후 7시께 시작하는 영화를 보기위해 부대식당앞으로 한명 두명 모여들기 시작했다.
영화관이라야 흰 페인트가 칠해진 식당한쪽 벽면 10m후방에 정차한 트럭위에서 영사기를 돌리면 되는것. 철모를 깔고 앉으면 한순간은 훌륭한 의자가 된다.
모두들 그런 편한 동작으로 영화가 시작되기만 기다리고 있는데 뜻하지 않은 소식이 들리지 않는가. 월맹 정규군들이 지역베트콩들과 연합해서 대규모 공세를 취할것에 대비해 각자 내무반에 들어가 비상대기를 하라는 지시가 떨어진것이다.
영화는 고사하고 재수없으면 잠도 설칠것 같다는 불평을 털어놓으면서 모두 자리를 떴다. 비록 전쟁에 나선 전투부대 이긴해도 우리는 사령부에 근무하는만큼 안전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다소 안도하는 터라 크게 마음쓰지 않은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터지고보니 상황이 보통이 아니었다.
그날, 정확히 1968년 구정공세가 터지던날   음력 섣달 그믐날 밤 - 양력으로 68년 1월 30일 밤 9시쯤이라 기억된다.
월남에 주둔하고 있는 전 미군들과 전체 한국군부대가 공격을 받은것이다. 이날 공세가 월남전사상 가장 치열한 전투로 기록될만큼 아군피해가 컸다.
보병9사단 백마부대 직할대 본부중대 소속인 우리는 영화상영이 취소되자 내무반으로 되돌아 왔다. 당시 파병군인들은 잠시라도 짬이 나면 그리운 사람들 보고싶은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는 게  일이었다. 이 날밤도 편지를 쓰면서 비상대기에 들어갔다. 내가 시간을 할애하고 노력해서 쓴 숫자에 비례해서 답장을 받아보는 것이 편지의 생리라 생각된다. 특히 전쟁터에 나간 군인들에게는 더욱 그랬다. 내가 많이 쓰면 답신을 많이 받고...게으름 피우면 답장이 줄어든다. 
밤중에 4시간 보초서고 내무반에 돌아와  졸린 눈을 뒤집으며 편지를 써야만 그 답장이 빠르면 20일 늦으면 한달후에나 돌아오기 때문이다.
46년전인 당시는 교통이 엄청 불편했다. 파월근무를 마치고 귀국하는 병력과 그자리를 채우기위해 신규로 파월하는 병력이 오고가는 배편에 편지가 실려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시간이 소요됐다.
잠시라도 게으름을 피우면 다른 동료들은 한꺼번에 5통~10통의 편지를 받는데 나는 고작 한 두통 받고 만다면 얼마나 서운한 노릇인가. 편지가 매일 도착하는 것도 아니다.  일주에 두어번 올까말까한데 그때 내편지가 없다면 그 참담한 심정은?
고향소식 가족소식 친구소식도 궁금하지만 사실은 옆동료들 보기에 비참한 모습이 되지 않기위해 쓰고 쓰고 또 편지를 썻던게 진심이다. 그런 연유로 잠 덜자고 게으름 덜 피우면서 편지 쓰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 비상대기는 편지쓰기에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그래서 다들 침상에 엎드려 편지를 쓴다. 그게 싫으면 장기판을 마주하고 앉았거나 또는 철지난 잡지를 뒤적이고 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피융 꽝! 피융 꽝!...... 포 떨어지는 소리가 심상치 않다. 월남생활을 오래한 고참들 얘기가 3개월전인 67년 11월에 우리가 얻어맞은 포소리와 너무나 똑같다는것.
이곳에 온지 2달밖에 안된 내 느낌에도 우리 쪽에서 적들을 향해 갈겨대는 포 소리와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느끼는 잠깐사이 부대원들은 재빨리 일어나 군장을 갖추고 자기 개인호로 뛰기 시작한다.
사령부에서 공식적인 비상발령이 나기직전에 이미 다 알아서 자기임무를 찾아 달리기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평소 비상에 대비해 부대가 자리잡은 산허리에  긴 터널을 파 사단 전 직할 부대를 연결해 놓았다.  중간 중간에 탄약과 수류탄을 갖춘 개인 호를 구축해서 만일의 경우 자기 호를 사수하는 훈련을 자주 받아 유사시 행동이 몸에 베어있었다.
난 그때 중대 연락병으로 내무반원들이 전부 자기호로 뛰어나가면 실내소등을 하고 중대본부에 달려가 상황보고를 한 후 다음명령을 기다리며 내무반을 지키는 것이  임무였다.
그날 밤 우리 중대에서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청음초와 매복조를 부대인근에 내보냈다. 청음초 4명은 부대정문옆을 통과하는 1번국도 건너편 개활지에 나가 적의 동정을 살피고 있었다.
적 척후병이나 또는 적의 병력이 보급품 수령을위해 움직이는 상황 파악차 부대 바깥쪽 마을과 적의 본거지인 산으로 통하는 길목에 매일밤 청음초나 매복조를 설치한다. 이것이 다른전쟁터와 달리 게릴라전을 특징으로하는  월남전의 작전중 하나였던 것이다.
그중 부대 가까이 배치돼 적과 접전은 피하며 그들의 동정을 본대에 보고하는 것이 청음초다.  부대밖 먼 지점에 잠복해 날밤을 새며 적의 주둔지와 보급품 수령지인 마을간의 접촉을 차단하기위해 필요하면 한판 붙는 것이 매족조의 임무다.
나도 매주 한차례씩 파월 기간 중 60회 이상 들판에 판초우의를 깔고 그 위에서 날 밤을 새며 적의 동정을 살피곤  했었다.  
잔뜩 긴장한채 앞만 주시하다 보면 의식하지 못한사이 식은 땀이 주루루 흐르던것이 어디 한두번인가. 그러다 사이 사이 틈날 때 고개를 높이 들어 남십자성을 찾는다. 반짝이는 4개 별속에 어머니 얼굴을 집어넣고 어머니...하며 마음속으로 불러보던 기억이 새롭다.
그날밤 본부중대 청음초 근무자로 나간 4명중 한명인 나의 전우가 영원한 작별을 고했다. 적의 포 공세에 이어 사단전체에 비상이 발령되자  즉각 철수명령을 받고 부대로 돌아오던 중 적의 공습과 아군의 반격이 교차되는 접전의 한복판에서 고귀한 생을 마감한 것이다.
육군병장 0 00  그는 1계급 특진해 육군하사로 지금 동작동에 있는 국립서울현충원 파월 전사자묘역에 안치돼있다.
20대 초반 젊고 꽃다운 나이에 할 일을 많이 남겨놓고 그는 그날 밤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갔다. 자식의 전사소식을 받은 그의 어머니는 또 얼마나 많은 세월을 눈물로 보내셨을가?                          <계속>

Comments

카테고리
국가보훈처 국립묘지안장관리시스템 농협 대한민국 육군 나라사랑큰나무 대한민국국회 KB국민은행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대한민국 국방부
방문통계
  • 현재 접속자 14 명
  • 오늘 방문자 333 명
  • 어제 방문자 946 명
  • 최대 방문자 1,206 명
  • 전체 방문자 49,092 명
  • 전체 게시물 2,399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