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수기

참전기<18>첫 매복작전 참가

최원일 0 2,509

 

월남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인데 제목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미군 신참병이 월남전선에 투입됐다.

군에 입대해서 정규훈련을 받았다. 전쟁터인 월남에 파견되기 직전에도 물론 살아남기 위한 여러

가지 훈련을 받았음은 말할 필요가 없다.

이 친구가 대규모 전투에 앞서 소규모 작전인 매복에 처음 투입됐다. 적의 움직임을 포착하기 용이한 지점에 자신의 하체를  숨길만한 자리를 찾아냈다.  그 속에서 상반신만 밖으로 내놓은 채 앞을 응시하고 있다.

뚫어지게 앞만 쳐다보다가 잠시 고향생각 하는 터에 후닥닥 놀랄 일이 발생했다. 아 바로 앞 3m우측에 적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눈은 적을 바로 보고 있지만 총구는 전방을 향해 놓여있다. 수류탄도 유사시에 곧바로 뽑아 던질 채비로 앞에 펼쳐놓았다. 평소 안전사고에 대비해 좌우로 갈라놓은 뒤 꼬챙이를 바로 펴 손에 쥐기 쉬운 위치에 배열해 놨던 것이다.

준비는 잘했는데 결정적 순간에 몸이 굳어 영 손이 말을 듣지 않는다. 축구경기에서 공격수가 콜키퍼와 1 대 1 찬스를 맞았는데 어쩌다 보니 헛발질을 했다면 적절한 비유가 될는지 모르겠다. 너무나 긴장한 탓에 불쑥 나타난 적을 보면서도 어 어 어 ~~ 하면서 마음만 조급할 뿐 몸이 굳어 버린 것이다.

한편 미군 신참병 앞에 순간적으로 모습을 들어 낸 적 척후병은 어떤가. 그는 본대가 움직일 방향으로 먼저  길을 나섰다. 미리 미군들의 동태를 파악하여 위험요소가 있을 땐 뒤따라 오는 부대에 알리는 것이 임무다. 그래서 조심조심 몸을 낮춰 전진하고 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적의 매복조와 마주쳤다. 그는 어땟을까?  그도 역시 너무 긴장한 탓에 몸이 굳어 버렸을 것이다.

총을 쥐고 있지만 총구는 앞쪽을 향해  있다.  눈은 왼쪽 3m전방에 상체만 들어낸 채 매복하고 있는 적을 보고 있다. 두 사람 적과 적이다. 짧은 한순간 눈이 마주친다. 서로 얼마나 놀랬을까? 생각만 해도 몸이 굳어지며 숨이 멈추어진다. 서부활극이라면 배짱 크고 사격솜씨 우수한 주인공이 당연히 엎퍼질 것이다. 그와 동시에 사격을 가해 상대방을 제압할 것이다. 그런데 이곳은 전쟁터가 아닌가.

이런 상태를 상상해 보시라. 누가 먼저 방아쇠를 당겨 적1명 사살과 총기 노획이란 혁혁한 전공을 인정받아 무공훈장을 받을 수 있겠는지?

영화는 이런 극적상황을  2~3초 보여준다. 그런 순간 예상치 않은 곳에서 총소리가 들리며 시끄러워 진다. 다른 위치에 매복하고 있는 미군과 적의 본대가 부딪쳐 한판 붙은 것이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든 미군 신병은 제 총을 챙긴다. 순간 당황한 적 척후병은 다람쥐같이 숲속으로 도망쳐 버린다.

미군 신병은 이 사실을 선임자에게 보고하지 않고 가슴에 담아 버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작전참여 횟수가 늘고 점차 전투에 익숙해져 고참으로 변해간다.

제대 후 한참 지난 뒤 이 영화를 보았는데 그 장면이 영 잊혀지지 않는다. 만약 내가 같은 처지를 당했다면 아마 미군병사와 꼭 같았을 것이다. 어 어 어 ~~ 하다가.......

그런 매복작전에 파월 16개월중 모두 60여회 출전했다. 처음 도착해서 한달 쯤하고  귀국 앞두고 한달 가량 열외로 취급돼 제외됐을 뿐이다.  14개월 동안 매주 1회씩 한주도 빠짐없이 투입됐다. 그때마다 상황을 메모하곤 했다. 

살아서 귀국한다면 이걸 자료로 모신문사에서 모집하는 논픽션을 써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수첩을 한동안 잘 보관했었다. 결혼 후 잦은 셋방살이하면서  이사 다닐 때 잃어버렸다. 얼마나 서운했던지... 참전 후 46년 만에 60회가 넘는 매복에 관한 경험을 간단하게 언급하자니 너무 아쉽기만 하다.

오늘은 첫 매복에 나섰던 얘기다. 11월 중순에 백마부대 부관참모부에서 근무하게 된 것은 먼저 쓴 대로다. 소속은 사단 본부중대. 내가 파월하기 1달전쯤 백마사단 사령부가 적의 공격을 받은 것도 연재물 초기에 기록한바 있다.

강원도 오음리서 파월훈련 받을 때 사단이 대규모 공세를 받아 영관급장교를 포함한 수십명이 전사 또는 큰 부상을 입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게 사실이었다. 그 일로 인해 사단은 평소 경계활동을 전보다 훨씬 강하게 수행하고 있었다.

그 대책중 하나로 사령부근무 병과 부사관은 물론 장교도  중령이상 참모를 제외한 소령을 포함 전장병이 매주1회씩 매복작전에 투입토록 조치한 것이다. 1번타자가 베트남전선에 갖 투입된 나와,  나와 함께 같은 배를 타고 갔던 신참들이었다.

12월 중순 사단수색중대 파견명령이 떨어졌다. 67년 17제대로 파월돼 본부중대에 근무하는 병들 전부가 그 대상이었다. 물론 17제대인 나도 포함됐다.

수색중대라면 군 제대하신 분은 전방수색중대를 생각하시면 된다. 영내 또는 영외로 나가 적의 동태를 살피며 적과 마주칠 때는 적절하게 대응하는 게 임무다. 적의 활동이 밤낮 구분 없으니 수색중대도 마찬가지다.

특히 월남전선은 밤을 장악하는 것이 전쟁에 이기는 비결이었다.  때문에 피아 구분 없이 여기에 신경을 곤두세우곤 했다. 베트공이라 불리는 게릴라들은 주둔하는 산에서 밤만 되면 내려와 마을로 잠입한다.  그들을 지원하는 세력들과 접선하거나 식량 소금 의약품등 필수물자를 조달하곤 했다.

이에 맞서는 우리는 그들이 오래 버티지 못하게 철저하게 마을과 고립되게 유도한다.  그러자면 매복을 통해  우리의 안전을  스스로 지키는 한편 그들의 밤 활동을 봉쇄하는데 주력했던 것이다.

수색부대 파견명령을 받고 그들과 합류했다. 오전엔 매복작전을 왜 수행하는지, 어떻게 작전에 임하는지, 적과 부딪치면 어떻게 대응하는지. 그다음 조치는, 매복지에서 철수할 때는? 등 등... 이론겸 안전교육을 받고 오후엔 실전에 투입됐다.

오후 4시쯤 전투식량인 C레이션으로 저녁식사를 간단히 끝내고 출발했다. 12명이 1개분대로 편성돼 4분의 3톤 소형트럭인 닷지차에 나눠 타고 30분정도 달려 오늘 밤 목표로 매복할 마을 인근에 도착했다.

닷지차는 미 GM사 제품으로 2차대전때 소규모병력 이동에 유용하게 쓰인 고물차다.  분대이동이 잦은 이곳 월남 전선에서도 효용가치가 큰 차로 평가됐다. 앞좌석 운전병 옆에 분대장이 타고 뒤에 5~6명씩 앉기에 알맞았기 때문이다.

차에서 내린 우리분대 12명은 분대장과 부분대장이 이끄는 2개조로 나눠 마을을 양분해서 한바퀴 돌며 주민들의 동향을 체크했다. 다른 한편으론 만약 오늘 밤 적이 이 마을에 나타난다면 어떤 경로를 거쳐 어떻게 움직일가를 미리 예측해 그들의 움직임을 봉쇄하기위한 대책을 꾸렸다.

매복에 나설 때는 대상이 되는 마을 주민들의 동향과 지리적 상황등 모든 것을 참작해 대응방안을 미리 세워 부대를 나선다. 목표지점에 도착하면  병력투입에 앞서 실제로 대상지역을 면밀히 정찰하고 분석한 것을 토대로 다시 작전을 수정하는 순서로 진행된다.

마을 정찰을 마치고 차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 왔다. 우리같은 신참들은 선배들이 어떻게 하나 주시한다. 앞으로 독립해서 매복작전에 나설때 참고하기위해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기억하기 바쁘다.

한참 토론 겸 회의를 마치고 다시 차를 타고 부대방향으로 되돌아 간다. 적의 첩자가 있다면 완전 철수한  것 같이 위장하기 위함이다. 마을을 벗어난 지점에서 내려 차는 부대로 돌려보낸다. 그런후 남은 병력은  어둠을 이용해 잽싸게 산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진입로 주변에 진을 치기 시작했다.

분대장과 부분대장 및 파월고참  등 3명이 조장이다. 각 조에  3명씩추가해 4명이 한조로 3개조를 편성했다. 각자 위치를 잡고 매복전에 들어간 것이다. 이 자리서 꼼짝없이 내일 새벽 날 샐 때까지 버티며 적을 기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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