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수기

참전기 행정과 발간계로

최원일 0 1,263

배 아프다고 말도 못하고 끙끙 알고 있자니 기운은 없고 설사 때문에 화장실을 안 갈수도 없고... 그러다가 기진맥진해 퍼져 버렸다. 옆 선배들이 그때서야 눈치를 채고 의무실로 데려가 약 먹이고 주사 맞고 난리를 피운 끝에 소생할 수 있었다.

처음 먹은 아이스크림으로 인해 엄청 고생은 했지만 그 맛을 결코 잊을 수는 없다. 그로인한 후유증도 만만치 않았다. 그 사건이후 아무리 더워도 찬 거라곤 입에 대지 않길 10여년. 그사이 한여름에도 맥주 한 컵, 사이다 한잔 마시지 않았다.

22세 새파란 시절 데인 그 상처 때문에 찬 걸 싫어하다가 30살이 훨씬 넘어서야 그 공포에서 차츰 벗어났다. 워낙 더울 땐 찬 음료를 조금씩 입에 대기 시작한 것이다. 어찌 보면 혹독한 시련이었고 한편 생각하면 우스꽝스런 사건이기도 했다.

설사병에서 회복된 후 내게 주어진 자리는 부관참모 당번조수. 원래 타이핑에 능숙한 고참병장이 타자수 겸 비서역할을 하고 있는데 일이 많아 그를 도와주도록 배치한 것이다.

처음엔 감을 못 잡아 이것저것 시키는 대로 쫒아 다녔다. 1주일정도 해보니 당번조수 역은 진짜 할 일이 못됐다. 월남전선에 파병되기 전 육군본부에서도 장군 당번병 조수노릇을 했다. 그 일이 지겹고 시간이 안가 피한다고 파월을 지원했는데 또 이게 무슨 꼴인가?

전에 다룬 적 있는 속기 주특기 덕분에 사단사령부로 떨어져 큰 덕을 보긴 했다. 하지만 그로인해 또 당번보조를 하게 될 줄이야 원망스런 마음이 든다. 가만 생각해 보니 기가 차기도 하고 오기도 생겼다. 사내대장부가 전쟁터에 왔으면 한판 붙어보고 싶은 생각도 마음한편에선 떠 오른다.

그렇게 한 보름쯤 지나갔다. 때마침 부관참모 보좌관 소령이 귀국하게 돼 그분 귀국박스 싸는걸 도와주게 됐다. 그분이 고향 광주출신으로 중학교 10년 정도 선배가 된다. 밑져야 본전이다 생각하고 마음을 털어놓았다.

사실 육본에 근무하면서 마음을 쏱을 보직이 없이 당번노릇하기가 지겨웠다. 그런 연유로 여기까지 피신해 왔다. 그런데 또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며 차라리 28연대로 갔으면 좋겠다고 하소연 한 것이다. 28연대가 어떤 곳인가. 6.25때 그 유명한 백마고지전투를 치러 승리로 이끈 백마부대를 상징하는 최정예연대다. 역시전통은 살아서 이어지는 듯 이곳에서도 가장 용맹한 부대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내 얘기를 다 듣고 난 보좌관이 이곳이 어떤 곳인지 잘 몰라 그럴 거라며 한참 다독인다. 사단에 근무하게 된 걸 진짜 큰 행운으로 알라고 타이른다. 그러다 마침 이쪽으로 온 행정장교를 불러 지금까지 나와 있었던 얘기를 들려주며 자기가 이곳을 떠나더라도 책임지고 문제를 해결해 주도록 당부하는 것이 아닌가.

그 일로 인해 나중에 부관부행정과 발간계로 옮기게 됐다. 발간계는 군대에서 사용하는 모든 문서를 비롯 용지와 책자 등을 지원부대로부터 수령 받아 각 사무실 및 예하부대에 보급하는일 이 주 업무다.

1년에 한 차례씩 문서를 이관 받아 영구보관부대로 넘기는 일을 한다. 국내에서는 이 문서이관업무의 감독이 대단히 엄격했다고 한다. 그래서 예하부대가 꼼짝 못한다는 소문이 나올 정도로 끗발을 부렸다고 국내에서 발간계를 봤다는 친구의 얘기도 있었다.

전쟁터인 이곳에서야 물론 그럴 리는 없었다. 다만 한 달에 한번정도 발간물 수령을 위해 나트랑에 있는 십자성부대에 들릴 수 있었다. 가끔 바람도 쏘이고 육본에서 한 내무반 생활을 했던 옛 전우도 만나고하는 즐거움이 있어 지낼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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