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수기

참전기 무운장구를 빌며

최원일 0 1,225

  ** 지금까지의 줄거리 요약**

나 최상병은 1967년 10월중순 베트남전선에 투입될 장병들을 훈련하는 파월교육대 파견 명령을 받았다. 사방이 온통 산으로 둘러쌓인 강원도 화천군 오음리 훈련장. 이곳에 모인 1천5백명 장병들은 나름대로의 사연을 안고 전쟁터에서 살아 남기위한 훈련을 받는다.

훈련과정은 비록 고되고 힘들었지만 장병들 가슴속에는 잊을수 없는 사연들이 새겨졌다.

단풍이 곱게 물들기 전에 입소한 이들은 한달에 걸친 고된 훈련을 마치고  첫눈이 가볍게 뿌려지던

1967년 11월 13일 이른아침 드디어 베트남 전쟁터를 향해 출진한다.

먼저 춘천역에서 장병들의 무운장구를 비는 환송식이 있었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초저녁 서울

청량리역에서는 가족들과의 만남과 아쉬운 이별이 함께했다.

자정이 갖지난 시간에 대구역 플랫홈에 도착했다. 밤잠을 설치며 기다리고 계시던 적십자사 어머니들이 자식같은 장병들에게 뜨거운 차한잔이라도 먹여 보낼려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부산항 제3부두에서 11월14일 아침에 요란하게 진행된 환송식에는 대부분의 장병들이 참여했다.

높이가 30여m에 달하는 배 갑판위에서 부두를 내려다 보며 행사를 지켜봤다.

그러나 난 연일 계속된 강행군으로 인한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배안 침실에서 잠간 졸았다. 그 사이에 환송식이 끝나고 배가 출발해 버렸다. 영원히 마음속에 새겨 둬야할 그 귀한 순간을 놓치고 말았다. 두고 두고 아쉬운 부분이었다.

배안에서는 갖가지 사연과 사고가 속출했다. 빠르면 4박5일, 더 걸린다 해도 5박6일이면 도착할수 있는 뱃길이다. 그런데 우리에겐 가혹할이 만큼 시련을 안기며 9박10일이나 걸렸다. 배속에서 보낸 10일은 생각조차 끔직한 악몽의 시간이었다.

11월중순 남지나해상에서 몰아친 태풍의 위력은 대단했다. 다 죽는 줄 알았다. 그래도 죽지않고 용케 살아났다고나 할가. 아무튼 너무나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이런 어려움을 거쳐 멀고 먼 이국 땅 전쟁터에 발을 디뎠다.

배안에서 부대배치도 이루어 졌다. 난  특수한 주특기 덕택에 백마부대 사단사령부 부관부에 배치되는 행운을 안았다. 머나먼 뱃길을 마치고 세계적인 휴양 관광지 나트랑에 도착해 느낀 나트랑 시가지의 모습은 전쟁터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부대를 향해 달리는 차량에서 본 시가지의 모습은 비교적 안정된 느낌이었다. 길거리에서 마주친 아이들이나 여고생들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전쟁으로 인한 조급함이나 될대로 돼라는 식의 허무감이나 축 늘어진 모습은 전혀 느낄수 없었다.

백마부대 보충대에 도착하니 포 쏘아대는 소리가 어찌나 큰지 놀랠지경이었다. 옆동료와의 말소리도 듣기가 힘들었다. 우리부대에서 적 주둔지라 예상되는 지점을 향해 갈겨되는 포소리가 줄어 들거나  사라지는 경우는 생각할수 없었다. 맨처음 포소리를  들었을 때는 무척 시끄러웠다. 하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니 그소리가 안들릴 댄 되레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만큼 현지상황에 적응했다고 할가?

이런 분위기에서 나를 포함한 세 사람이 부관참모부로 배치를 받아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이다.. 

** 이상이 지금까지 14회 연재된 내용의 줄거리입니다. 아직 못 보신 분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다시 꾸려 보았습니다. 요약된 내용 보신 후 나머지부분은  챙겨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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