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수기

참전기 드디어 백마부대로

최원일 0 1,619

 

나트랑 해변가에서 다른부대(사단사령부, 직할중대나 29연대가 주둔한 닌호아 지역이 아닌)인  투이호아로 가는 28연대, 캄란지역으로 배치돼 새 보금자리를 찾아가는 30연대 전우들과 헤어졌다. 언제 다시 보게될지 기약도 없는데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눈인사정도로 작별한 것이다.

그리고는 날 기다리는 트럭에 올라탔다.

지금부터는 백마부대 일원으로 베트남전선에서 1년동안 복무할 새 터로 옮겨야한다. 트럭한대에 20명 가량 올라탔다. 수십대의 군용트럭이 대오를 갖춰 닌호아를 향해 출발했다. 앞뒤좌우로 헌병차를 비롯한 경계병들을 태운 차량들이 호위하며 달린다. 혹시 발생할지도 모르는 인민해방전선(베트공, VC)의 공습에 대비해 철통같은 경계태세를 펼치고 있다.

4시간이상 달려온 것 같다. 베트남 국토의 심장부인 남북을 연결하는 1번국도라 하지만 좁은 2차선에 포장도 안돼 먼지 구더기다. 50년대부터 70년대에 이르는 우리의 시골길을 연상하면 될듯 싶다. 버스한대만 지나가도 숨이 막힐 것 같은 부우연한 연기같은 먼지가 꽉차 한동안 호흡이 정지될 뻔한 그런 모습이다.

군청소재지인 닌호아 읍은 그런대로 도회지 형태를 갖추었다. 인구도 우리 시골 읍 정도는 되는 것 같다. 2-3층 건물도 있고 가게에는 상품도 제법 쌓여 있다. 사람 사는 느낌을 풍겨주는 아담한 소도시를 연상케 한다.

우리 일행이 닌호아 읍내를 통과하는 시간이 여학교 하교시간과 겹친 것 같았다. 수십명의 여학생들이 길 양쪽에 서서 우리를 보고 있다. 차위에 앉아있는 우리도 그들을 유심히 보았다.

말로만 듣고 사진으로만 보았던 하얀 아오자이를 걸친 모습들이 무척 예쁘다. 차량이 잠시 속도를 늦추는 사이 그들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봤다.

그늘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너무나 인상적이다. 전쟁터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처음 마주한 그네들의 모습이 너무나 예쁘게 각인됐다. 지금도 베트남하면 가장 먼저 떠 오르는 게 그날 마주친 여학생들의 청순한 모습이다.

닌호아에서 십리쯤 더 가니 백마부대 정문이 나왔다. 하얀 말이 앞발 두 개를 높이 쳐들고 힘차게 달리는 것 같다. 백마의 웅비하는 모습을 크게 그려놓은 보병 제9사단 백마부대라는 표시가 눈에 확 띤다.

부대정문을 들어서니 길가에서 가까운 쪽에 보충대가 자리잡고 있다. 우린 그곳에서 빠르면 하루 늦으면 2-3일 머무르다 각자 새 보금자리를 찾아 갔다.

보충대 막사는 24인용 대형천막을 쳐놓고 안에 양쪽으로 야전용 간이침대가 놓여 있다. 부대안에 들어선 순간부터 엄청난 포소리에 귀가 따갑다. 사령부 정면 8Km 전방에 호네오산이 있는데 그곳이 적 2개연대의 본거지라 한다. 그곳을 향해 1년 내내 계속 포를 쏘기 땜에 그렇다는 것이다.

처음엔 무척 신경 쓰이지만 이틀만 지나면 친근해 질거라며 걱정말라고 선임자들이 다독인다. 좀지나 보면 포소리가 안들리는 경우 되레 불안하다고 까지 말한다. 설마 그러랴 했지만 그말은 사실이었다. 막사 안 빈침대에 다블백을 올려놓고 인원점검을 한후 저녁식사를 했다.

막사 옆 식당에서 간단하게 육류와 야채를 조리한 반찬 몇가지와 쌀밥이 배식됐다. 반찬류는 깡통에 들어 있는 B레이션을 섞어 뜨겁게 데친 정도였다. 밥은 이곳 쌀로 지은 것이다.

50대 후반이상 어르신들은 기억하실 안남미로 지은 밥이다. 삼국지 마지막편인 5권째에 제갈공명이 평정한 안남지방이 바로 오늘의 베트남이라 안남미는 바로 베트남산 쌀인 것이다. 6.25직후 어렸을 때 구호물자로 받아 많이 먹어본지라 전혀 낯설지 않다. 모양이 가늘어 길쭉하고 다소 푸석푸석하며 찰기가 부족하다고 할가?

이 쌀은 지금부터 친해져야 이곳생할이 불편하지 않을 것 같아 부정적인 생각은 떨쳐 버리기로 했다. 맛있다 생각하니 먹을만 하다. 16개월 이곳 생활 중 밥으로 인해 애먹은 적은 없어 엄청 다행스럽게 복무한 셈이라 감사한다.

저녁식사가 끝난 후 부대생활에 대한 주의가 있었다. 얘기를 듣기 힘들만큼 포소리가 요란하다. 포 갈겨대는 소리는 밤중에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국땅 전쟁터에 내팽겨진 신참병의 첫날밤은 눈만 감은채 자는둥 마는둥 지새웠다. 어머니 생각, 가족 생각, 친구들 생각 뿐 아니라 앞으로 어떤 일이 내 앞에 전개될지에 대한 두려움 등 등...

그렇게 날밤을 새운 후 푸석푸석한 얼굴로 다음날 기상했다. 자세히 보니 대부분 동료들 모습이 비슷해서 한바탕 웃은 기억이 새롭다. 인원 점검 후 내무반주변 청소하고 식사를 끝냈다. 한참 지나니 부관참모부 인사과 직원들이 와서 날 포함 3명을 데리고 갔다. 이날부터 부관부에서 일하게 된 것이다. 소속은 보병 9사단 본부중대.

사단내 각 근무처 배치는 야산을 등지고 1번국도를 향한 앞쪽 상층부에 지휘부가 있다. 바로 밑에 부관부를 비롯해서 각 참모부의 야전 막사가 자리 잡았다. 그 아래 큰 연병장이 펼쳐있다. 연병장을 둘러싸고 오른쪽은 미군 헬기중대, 왼쪽엔 포병대대가 위치하고 있다. 사단사령부 옆 언덕배기를 돌아가면 29연대본부와 각 직할중대가 야산을 삥 둘러 천해의 요새를 이룬 지형이다.

그 사이사이에 장교 숙소, 본부중대와 내무반이 자리 잡았다. 내무반은 보충대와 마찬가지로 대형텐트다. 그 안에 20여개의 간이침대가 놓여 있다. 내가 파월생활을 시작한 6711월만 해도 백마는 파병 된지 1년 남짓할 무렵이었다. 그런 관계로 부관부 인원 40여명 중 절반이 첫 파월자였다. 나머지 절반정도가 교체병력이었다.

장교와 부사관들도 비슷한 양상으로 반반 정도 차지했다. 장교숙소는 목조건물로 지었고 사병들은 텐트에서 한동안 생활했다. 그러다가 68년초에 아늑한 장소를 잘 다듬어 반영구 목조건물을 지어 이사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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