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수기

참전기 선상분류-사단에 배치되다

최원일 0 1,353

 

베트남전선에 신규로 투입되는 우리 동기 1,500명의 운명은 배안에서 최종 결정됐다.

우선 청룡부대인 해병대 장병들이 다낭에서 내렸다. 대신 1년동안 고생하며 귀신잡는 해병이란 무적의 신화를 창조한 귀국자들이 이배에 올라 타 꿈에 그리던 고향을 찾게 됐다.

육군 가운데 숫자가 적은 비둘기부대원들은 최종배치 부대를 어떻게 결정하는지 알 수 없으나 내가 속한 백마부대원들의 운명은 배안에서 판가름 났다.

중부지역인 다낭에서 남쪽으로 뱃길 12시간 거리인 나트랑(지금은 도시명이 나짱으로 바뀜)

까지 가는 동안에 선상분류가 다 끝났다. 나트랑 해변 도착즉시 배치 받은 부대로 인계돼 뿔뿔이 흩어졌다.

후일 내가 부관참모부 근무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내용은 이렇다. 신참 병력이 다낭에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백마사단 부관부 인사과 요원들이 미리 이곳에 와서 대기하다가 배가 도착하면 승선한다.

배안에서 백마로 가는 병력의 가록카드를 전부 인수, 사단사령부와 직할부대및 각 예하연대로 보낼 인원을 다시 편성하여 정리한다.

나트랑 도착과 함께 각부대별 인수팀에게 기록카드와 병력을 넘긴다. 그러면 그들이 신규보충병들의 카드와 인원수를 확인하고 이들을 데리고 귀대하면 병력인수가 끝난다. 마치 훈련소나 또는 후반기 교육을 마치고 팔려가는 경우와 흡사하다. 의정부 101보충대나 춘천 103보충대로 넘어 갔다가 그곳에서 다시 각사단으로 넘어가는 것과 같은 과정이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과정을 거쳐 백마부대 작전지역내 각지로 흩어진 장병들은 배치받은 지역에서 1년근무를 마치고 귀국하는 것으로 돼있다.

여기서 주특기 얘기를 좀 해야겠다. 군대생활하면서 난 주특기로 인해 상당한 대우를 받았다. 고등학교 다닐 때 우연히 한글속기를 배웠다. 그것을 살리기 위해 신문기자를 목표로 대학은 신문학과를 택했는데 이것이 군생활 내내 도움을 준 것이다.

입대 할때 기록카드 특기란에 한글속기라 기록했다. 6주간 훈련이 거의 끝나갈 무렵 훈련소인사과에서 특별면담과 실기테스트를 했다. 다행히 테스트에 합격해 속기사병이란 특수한 주특기를 부여받은 것이다. 일반행정 주특기(700)에서 다시 한 단계 더 세분한 주특기(707)였다. 이 숫자 707이 제대할 무렵엔 일반행정 700으로 흡수되고 그뒤에 소수점아래 .7이 붙어 나중에는 700.7로 바뀌었다.

이런 주특기를 부여받은 연유로 크게 덕을 보게 된 것이다. 당시 내 주변엔 군대는 물론 정치권 등 이른바 함께나 쓰는 위치에 있는 분이 아무도 없었다. 속말로 아무런 빽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육군본부로 배치됐던 것이다. 서울근처 수도권에만 떨어져도 큰 복인데 시내한복판 삼각지로 갔으니 엄청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60년대 중반 당시는 최소 장군 배경이 아니면 사병의 육본배치는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런 상황임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육본에 배치돼 이른바 좋은데서 졸병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속기병이라는 주특기 때문이었다.

선상분류 책임자인 백마부관부 인사장교가 이걸 알아봤다. 배안에서 또 날 찾아 면담을 한후 부관부 필수요원으로 찍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당시 전 육군에 속기사병은 단 3명에 불과했었다. 그중 한명이 자기부대로 오니 이게 웬 떡이냐 하고 붙잡아 버린 것이다. 물론 부관부에 배치하면 두고두고 쓸모가 있을 거라 판단한 때문 일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배안에서 다시 편성된 우리는 사단사령부-사단직할대-29연대로 배치된 병력은 닌호아로 떠났다. 28연대는 투이호아, 30연대는 캄란지역으로 흩어져 각각 자기부대를 찾아 갔다.

당시 백마부대는 베트남 중부전선의 요지인 1번국도가 지나가는 광활한 지역이 작전지역이었다. 그 일대를 평정하는 일이 주업무였다. 한국군 파월이후 최초로 해병대가 거쳐간 투이호아에서 사단사령부가 위치한 닌호아를 거쳐 미군의 주요 보급처인 캄란베이까지 작전지역이 우리나라 휴전선 전체 155마일보다도 더 넓었다.

우리가 베트남에 도착해 착륙한 나트랑 해변에서 사단사령부가 위치한 닌호아까지는 군트럭으로 4~5시간 걸리는 먼 거리다. 대규모 병력이 움직이다 보니 예상치 못한 적의 공세에 대비해 철저한 사주경계를 펴야하는 관계로 이동시간이 훨씬 많이 걸렸다.

이 지역은 백마부대가 대규모 작전을 통해 완전장악하고 있던 터라 비교적 안전지역이라 평가되는 곳이다. 사단보충대로 이동하면서 이곳 저곳 바라본 시가지는 아담하고 건물들의 색깔이 고상하며 뭔가 유서깊은 전원도시 같은 인상을 풍겼다.

우리가 도착한 백사장에서 쾌 멀리 떨어진 해변을 포함해서 시내까지 바닷가가 계속 이어졌다. 해변은 길고 넓은 모래사장이 펼쳐 있어 처음 본 이국의 모습이 매우 아름다워 보였다. 무장한 군인들과 군용차들이 슁슁 지나가는 살벌한 전쟁터만 아니라면 더없이 좋은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나트랑 해변은 지금 베트남 최대의 관광휴양지로 변했다고 한다. 아직 가보진 못했지만 많은 관광객들이 즐겨 찾아 며칠씩 묵어도 싫증나지 않는 곳으로 알고 있다.

남북을 가로지르는 1번국도를 따라 쭉 이어지는 길목에서 가끔 마주친 아이들의 모습은 시원하고 소탈한 것 같았다. 전쟁터라고 위축됐다거나 그런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이것이 베트남에 도착해 나트랑 시내를 지나고 닌호와 읍을 거쳐 백마부대에 이르는 과정에서 느낀 첫날 소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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