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수기

참전기 배안풍경과 이런일 저런일

최원일 0 1,354
 

파도가 엄청 심해진다.  45년 전 당시로서는 엄청 크다고 할 수 있는  1만5천톤급 배라해도 자연앞에선 나무 이파리에 불과한 것 같다. 그 큰 덩치를  좌로 우로  마치 그네 타듯 울렁거린다.

그 안에 타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견딜 재간이 없었다.

멀미가 심해져 대부분 군인들이 수 없이 곤욕을 치뤘다. 침실에서는 물론, 복도에서도, 심지어는 식당에서 배식받은 식기에 까지 토하곤 했다. 너나 내나 다함께 치루니 나중에는 음식찌꺼기가 보이지도 않고 맹물에 침이 질질 매달려 나오곤 했다.

방금전에 맹물 비슷한 물기를 내어뿜었는데도 옆 동료가 끄~윽 끄~윽 하면 덩달아 내품는 경우도 잦았다. 처음 음식물이 나올 땐 냄새나고 역겨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전혀 지저분하다는 생각을 가질 분별력도 사라졌다. 오직 한가지 빨리 이 고통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바램뿐이었다.

이런 고통도 하루 이틀 지나면서 약을 타 먹고 또 비닐봉지를 배급받아 그걸 목에 차고 다니면서 대비를 하니 좀 나아졌다.

 최초 멀미가 심할 땐 식사도 거르고 이런 배를 탄걸 몹시 후회도 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이란 주어진 환경에 적응할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걸 차츰 느끼게 됐다. 적응이 늦어질수록 더 힘들다는 걸 스스로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옆 동료들과 서로 격려하면서 먹고 또 토하고 하더러도 식사시간에 맟춰 배식받아 밥을 먹기 시작했다. 식당에서 나오다가 마주친 다른사람이 토하면 덩달아 내뱉기도 했다. 그렇게해서 사흘정도 시달리다 보니 차츰 일기도 정상을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남지나해상에서 태풍권에 휘말린 일본상선이 긴급구조 신호를 보내 그배와 가장 근접거리에서 항해하던 우리 배가 상선을 안전하게 일본근해로 유도하기위해 항로를 바꾼 탓에 그 배에 타고 있던 우리군인들이 엄청 고생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산더미 같은 파도가 덮치고 멀미가 계속되는 과정에서 여러사람이 부상당하는 사고가 발생해서 선내 의무실이 붐비기도 했다. 어떤 병사는 복도 옆에 붙잡도록 고정시켜놓은 쇠말뚝에 부딪쳐 팔이나 다리가 부러지는 사태도 있었고 가벼운 찰과상 환자는 많았다.

그러다가 언제 그랬냐 싶게 날씨가 좋아지고 물결이 잔잔해졌다. 모두들 갑판에 둘러서서 파도와 싸운 무용담들을 얘기하며 깔깔대기도 했다.

군대는 어디서나 1주에 한번 꼴로 대청소를 하고 내무사열을 받는 게 일상화돼 있다. 배안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닌 듯 이곳서도 대청소를 자주했다. 미군이 검사해서 상태가 안 좋으면 딱지맞고 다시청소를 하기도 했다.

검열을 맡은 미군들이 엄청 까탈스러워 처음엔 대충 대충하고 넘기려 했던게 통하질 않았다. 손끝으로 먼지를 씻으며 다시 하라고 지적 하는 데는 도리가 없었다. 나중엔 아예 포기하고 열심히 청소하곤 했던 기억이 난다.

대청소 하는 과정에서 대단한 수확을 얻어냈다.   우리선실 바닥에 배안창고로 연결되는 통로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길로 들어가 보니 맥주니 음료수니 먹을거리들이 수북하게 쌓여있었던 것.

몇 사람이서 취침시간에 잠입해 박스 채 같다놓고 다 치운 후 빈통은 갑판으로 들고올라가 바다에 빠뜨리곤 해서 아예 흔적을 지워버렸다. 우리쪽에선 완전범죄라할가? 들통이 나지 않았는데 다른 선실에서 빈병처리를 안해 미군들 눈에 띄는 바람에 비상이 걸렸다. 그쪽선실에서 가담한 병사 몇 명이 선내영창에 갇혀 며칠 격리되는 불상사도 발생했다.

여기서 화장실 얘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당시 우리 한국인들은 태어나서 이날까지 걸터앉는 수세식변기를 사용해 본적이 없다. 내 경우는 60년대 중반에 건축한 마포아파트를 방문한 적이 있어 걸터앉진 않았지만 구경은 했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장병들은 난생 처음 대하는 물건이라 이용하는데 큰 불편을 겪었다. 남들이 안보는 한적한 곳에 홀로 쭈그려야만 작동하는게 우리의 생리가 아닌가. 그런데 배안 화장실은  넓은 공간에 변기가 수십개 놓여 있고 가림판도 없다.

더구나 많은 인원이 쳐다보는 가운데 어떻게 일을 볼수 있단 말인가. 그런 장소에서 큰일을 치루려고  몇차례 진통을 겪다가 워낙 급해지니 저절로 해결이 됐다. 대다수 동료들도 마찬가지 과정을 겪고 화장실 문화에 익숙해졌다는 경험담을 나누었다.

원채 많은 인원이 움직이다 보니 도난사고가 있었다는 등 확인 되지 않은 루머가 떠 돌기도해 가끔식 신경을 쓰게 만들었다. 그런 때면 모든 병력을 선실에 집합시켜 잔소리를 늘어 놓는등 갑판에도 못 올라가게 해 불편이 따랐다 .

이런 일이 잦자 나중엔 집합명령이 떨어지면 갑판 한쪽 깊숙한 곳에 잠시 피신해 시간을 떼우는 등 요령을 피우기도 했던 기억이 새롭다. 이때쯤 날씨가 뜨거워져 11월 하순인데도 땀이 나기 시작했다. 열대지방에 다다랐다는 신호다.

이런 여러 과정을 겪은 후 9일째 되던 날 아침에 드디어 멀리 한 점을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우리의 목적지인 베트남이 그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다. 그 한 점이 점차 커지면서 산과 모래사장이 나타났다.

여기가 중부베트남의 대도시 다낭이다. 9일 만에 마주한 육지에서 풍기는 흙 내음이 고소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곳에서 너댓시간 머물렀다. 해병대인 청룡병사들이 모두 내리고 1년 복무를 무사히 마치고 고향을 찾는 귀국용사들이 그 자리를 다시 메웠다.

귀신 잡는 해병이란 무시무시한 칭호를 듣는 그들이 배에 올라 갑판을 점령하는 바람에 우리 육군 신참들은 주눅이 들어 그들 옆에 얼씬거리기도 힘들었다. 그러다가 용기를 내서 고생들 하셨다고 말문을 트니 그렇게 부드러울 수가 있나?

우리더러 앞으로 고생 많겠다며 부디 건강하게 임기 잘 채우고 고국에서 만나자고 격려해 주는 게 아닌가? 역시 어려움을 이겨낸 사람만이 풍기는 여유와 느긋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도 1년 후엔 저들과 마찬가지로 여유있는 마음으로 귀국선을 타야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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