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수기

참전기 청량리역 - 대구역에서

최원일 0 1,207
 
춘천역에서 환송식이  끝나고 우리는 열차안에 들어갔다. 미리 준비한 도시락으로 점심
식사를 했다. 오후3시쯤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를 실은 군용열차는 부산항을 향해 남으로 남으로 달린다. 지금은 초특급 청춘열차가
다니는 철길이다. 상봉역에서 경춘선 전철을 타도 불과 1시간 거리로 가까워진 춘천길이
그시절엔 그렇게 멀고 멀었던지?
한동안 정신을 뽑을 것 같이 시끌벅적한 환송식이 끝나고 석탄 떼는 증기기관차가 힘겨운
기적소리를 내뿜으며 우리의 산야를 달려간다.
기찻길 주변 논두렁엔 이제 막 거둬낸 벼섬들이 논 곳곳에 쌓여 있다. 저 쌀이면 내년봄
보리익을 때 까지 식량걱정은 안해도 될것 같은 생각이 든다.
왜 하필 이 순간에 오늘밤만 지나면 이 땅을 떠나 전쟁터를 향할 녀석 생각에 웬 식량
걱정이 떠오르는지 내 스스로 생각해도  모르겠다.
아마도 그때 살림들이 너무 어려웠기 때문에 논바닥에 풍족하게 쌓인 곡식을 보며 흡족한
마음이 든 때문이라 자문자답해 본다.
춘천서 서울청량리까지 3시간이상 달려왔다. 차창밖으로 어둠이 짙어졌을 때 열차가 청량리역
플랫홈에 닿았다.
도착한 순간 차창 밖을 보니 희미한 불빛아래 어머니와 형이 손을 들고 아는체 하지않는가,
그옆엔 우리교회 교우들 몇이 함께 반기고 있다.
내가 탄 차가 6호칸이라 그명단을 보고 중간위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식구들은 그자리에서 난 목만 차창밖으로 내밀고 한참 얘기를 주고 받았다.
이 때 열차안에 있는 파월장병들은 열차 밖으로 나갈수가 없었다.
좁은 공간에 군인들이 나가게 되면 질서유지도 안될 뿐만아니라 만약 빠지는 자가 있다면
큰일이기 때문에 통제를 한것이다.
우리식구들은 목사님 인도로 찬송을 크게 부르며 예배를 드렸다. 그 모습이 경건하고
아름답게 보였던지 나이드신 어르신이 들고 있던 꽃다발을 내목에다 걸어주는것이 아닌가?
깜짝 놀래 쳐다보니 장교인 사위에게 줄려고 가져왔는데 사위는 저안쪽에 얼굴만 보이고
접근할수도 없어 그러니 그냥 받아두라시며 끼워 주신다.
이모습을  본 우리교인들이 이번엔 박수를 친다. 이래 저래 청량리역 환송은 날 위한 환송식이
돼 버린 셈이다.
이렇게 한30분정도 지나니 안내방송이 나온다. 환송객들은 아쉽지만 한발뒤로 물러나 달라는
멘트다. 이제 차가 떠나야 할 시간이 된것이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갈사람이나 남을 사람이나 심사가 불편한 것은 마찬가지다. 
길게 기적이 울린다. 어머니와 형은 한발 물러서고 난 눈을 감았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족과 헤어졌다. 난 계속 눈을 감고 방금 일을 조용히 되내 보았다.
아 이제 드디어 떠나 가는구나. 인제 언제 다시 와 볼는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스스르 조름이 온다. 에이 모르겠다. 한숨 자고보자.......
한참후 떠드는 소리가 들려 정신을 차려보니 저녁 도시락 들라고 옆동료가 깨운다.
저녁을 먹고 깜깜한 차창을 보고 또 뭘 생각하고 하다 보니 기차가 멎는다.
어느새 대구역에 도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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