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의 낚시가 뭔지! (2편)

정동만 0 575 08.19 13:19

어젯밤 낚시 건은 비밀로 해 달라고 신신당부해 놓았지만 아무래도 께름칙하니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어 안 되겠다 싶어서 캔 맥주 한 박스를 사 주고 입막음을 해 놓았다.

오랜만에 손맛을 봤으니 매사 하루해가 즐겁다. 룰루랄라~

그런데 일이 여기서부터 꼬일 줄이야 그 누가 알았으리. "아이고! 두야~"

다음 날 새벽 보초 교대하고 겨우 잠이 들락날락하는데 선임수병이 마구 흔들어 깨운다.

보병 1대대 2중대에서 연락이 왔는데 빨리 지뢰탐지기 메고 가 보잔다.

잠이 덜 깬 게슴츠레한 눈으로 허겁지겁 15kg은 족히 넘는 웬수 같은 지뢰탐지기를 등에 짊어지고,

M1소총은 오른쪽 어깨에 메고, TNT 담은 주머니는 허리에 차고, 가기도 전에 힘이 다 빠지네.

"어휴~ 쫄병이니께 헐 수 있남! 지는 선임수병이라꼬 카빈소총 하나 달랑 메고... C브랄~"

본대에서 “쾅응아이”로 가는 1번 국도 중간쯤에 보병 1대대 2중대가 있었는데 보병들이

야간 매복을 하고 돌아오던 중 어젯밤 베트콩들이 도로에 지뢰를 매설해 놓은 듯한 흔적들이

여기저기 많이 있으니 지뢰탐지병을 보내서 도로를 탐색해 달라는 것이다.

이 1번 국도를 통해 탄약이며 식량 등을 수송하기 때문에 한국군에겐 매우 중요한 도로다.

4km가 넘는 거리를 방울소리가 나게 열나게 가는데 2중대 다 가기 전 50m쯤에서 "쾅" 소리와 함께

월남 삼발이 차가 하늘로 솟구쳐 오른다. 바로 코앞에서 터진 일이라 귓구멍이 먹먹하다.

“빈숀”쪽에서 “쾅응아이”새벽시장에 팔 채소를 싣고 가던 월남 삼발이 차가

어젯밤 베트콩들이 도로에 매설해 놓은 지뢰에 터진 것이다.

한국군을 잡으려다 죄 없는 민간인들만 잡은 꼴이다.

팔다리가 끊어진 채 살려달라고 울부짖는데 아비귀환이 따로 없다.

이때 마침“쾅응아이”쪽에서 “빈숀”쪽으로 오던 삼발이 차가 폭발현장을

비껴가려고 도로 가장자리로 오다가 또 다시 "쾅" 하고 터진다.

"아이고, 하느님! 부처님! 오늘은 아침 초장부터 이 무슨 난리당가요 잉~"

사고현장을 대충 수습하고 본대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한잠 자려는데, 선임수병이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초소 앞으로 전원 집합!”소리를 내지르는데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다들 "뭔 일이데여?"하며 궁시렁거리면서 모여든다.

아니나 다를까 그놈의 달밤낚시 건이 뽀록이 난 것이다.

캔 맥주까지 한 박스 사 주며 비밀로 해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건만

새끼가 술을 먹다 조동아리로 씨부렁거린 모양이다.

"정일병 앞으로!”하늘 같은 선임수병의 목소리에 기가 질려 고개를 움츠리며 앞으로 뛰어나갔지.

"야간 경계근무 중 초소 무단이탈!"

"제일 쫄병 놈의 새끼가 기합이 빠져도 한참 빠졌어 전쟁터에서 죽을라코 섹쓰나? 잉~"

"니는 달밤에 붕어 타작했응께 내는 오늘 니 궁딩이 타작할란다"

"곡깽이 자루 가지고 앞으로!"

나는 그날 난생처음 해병대 기수 줄빳다로 뒈지게 맞았다.

내 밑으로는 나보다 2개월 늦게 입대한 175기 한 명이 있었을 뿐이다.

몇 날 며칠을 엎드려 자야 했지만 한동안 그 달 밝은 밤의 월남 붕어낚시는 잊을 수가 없었다.

나는 정말 월남에 가고 싶어서 갔던 게 아니다.

내가 다니던 전주공업고등학교는 3학년 2학기가 되면 진학반하고 취업반으로 나뉘어

취업반은 2학기때부터 취업할 공장으로 출근하여 실습을 하고 졸업 후,

그 공장에서 "OK"하면 그 공장에서 사회인으로서 첫 출발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근데 졸업을 한 달 앞두고 다니던 그 공장이 문을 닫게 돼,

학교에 다시 가 봐도 별 볼 일 없이 시간만 축낼 것 같고...

하여 학교에 사정을 얘기하고 대한민국 남자라면 어차피 한 번은 마쳐야하는

국방의무를 남들보다 좀 더 일찍이 마치려고 졸업을 한 달 앞두고

내 나이 19살이 되던 해 1966년 1월 4일 해병대 신병 173기로 지원 입대했던 것이다.

진해와 창원 상남훈련대에서 기본 훈련을 마치고 병과가 야전공병이라, 

김해 육군공병학교에서 위탁교육을 마친 후 

그해 6월에 포항에 배치되어 쫄병생활이 시작되었지만, 같은 선임수병들의 등살을 배겨낼 수가 없었다.

밥이 적다고 밤마다 화장실 뒤편으로 불러내어 야전삽으로 쳐대곤 하는데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탈영이냐? 월남이냐? 그래서 며칠고민을 하다가 마침내 결정을 내렸지.

월남은 전쟁터니까 밥은 걱정 없이 실컷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중대 선임하사관에게 담배 한 보루를 사 주고, 하소연하여 월남에 가게 된 게지.

배고픈 슬픔을 안 겪어 본 사람들은 알랑가 몰라?

안 먹고는 살 수 없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는 것을...

사람 세상 사는 거, 참! 우습다. 배고파서 월남에 밥이나 실컷 먹으러 갔던 건데, 안 죽고 살아왔다고

지금은 월남전 참전유공자라 하여 국가보훈처에서 매달 30만원, 전주시청 생활복지과에서 5만원을

참전명예수당이라는 명목으로 내 통장에 자동 입금시켜 주니...

짜장면 먹고 싶으면 삼천동 2,000원짜리 짜장면 사먹으러 가고,

내 좋아하는 붕어낚시가 하고 싶을 때는, 고산터미널행 535번 시내버스를 타고

매주 송현낚시터에 갈 수 있으니, 이 어찌 좋지 아니한가!

낚시터에 갈 때면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정말 정말 행복합니다”

가수 윤항기 씨가 부른“나는 행복합니다”노래가 입에서 절로 나온다.

이것으로 월남 붕어낚시 뒷얘기를 마무리할까 합니다.^-^


여러 전우님들! 식사 때 아무쪼록 골고루 잘 자시고, 더 늙어 다리 힘 빠져 후들거리기 전에

운동 삼아 부지런히 걷기도 하시면서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생활하십시오.

그게 바로 행복의 길로 가는 첩경이 아닌가 싶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주에서 새끼 청룡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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