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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월한국군에 대한 음해의 진실(퐁니퐁넛과 하미마을 허위조작사건)

강상구 0 165 04.17 21:49

(요약편 제4)) 파월한국군에 대한 음해의 진실

 

1. 허위사실 조작 및 유포행위의 대표적 사례

      여기 거론하는 퐁니.퐁넛과 하미마을 학살사건은 이번 한베평화재단이라는 사이비 단체가 주관하는 '시민평화법정'에서 진상을 밝혀 국가에 책임을 묻는다는 사건으로 베트남에서 학살 피해자 2명을 불러들여 김영란 전대법관 등 저명인사들이 판결을 한다는 사건이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이러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데 집회 보류가 합당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월참회의 지도부가 속수무책이니 통탄할 노릇이다. 역시 경제부국이라지만 힘없는 대한민국이 한스럽다. 일단 현 사태를 지켜보겠지만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지리라 믿는다.

 

(4) 퐁니 퐁넛마을 학살 사건의 진상

 

퐁니.퐁넛마을 학살음해와 왜곡된 시나리오

한겨레 고경태 일당은 1968. 2. 12일 꽝남성 퐁니 마을에서 발생한 주민 69명의 피해를 한국군의 학살로 단정하고 이를 한겨레 21에 유포 한다.

고경태는 이 사건에서 마을 근처를 정찰하던 중 베트콩의 저격을 받아 피해를 입은 청룡 1중대가 수색을 위해 마을에 진입한 사실만으로 여러 추정과 거짓발언들을 스스로 추리해 정확 할 거라는 그의 왜곡된 시나리오를 확정 하였다.

이사건의 진상조사와 결론

당시 이 사건은 미군과 남베트남군이 보호지원하는, 그리고 발포제한 구역으로 설정된 전략촌(귀순촌)의 진입과 그 피해라는 점 때문에, 주민의 항의와 미군의 의혹 보고서에 따라,

- 한국군 학살에 대한 당시의 현지 진상조사가 2년 반에 걸쳐, 1차 꽝남성 군 행정기관의 즉각 조사, 2차 주월 미군 사령관의 요청에 의한 주월 사령부 조사, 3차 자유월남 국회의장 요청에 의한 미월한국의 합동조사, 4차 박대통령 지시에 의한 중정의 조사,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 의회 싸이밍턴 청문회 까지 엄격하게 진행 되었다.

- 특히 이사건의 의혹에 대한 진상조사는 남월남군과 미군이 전략적으로 지원하는 마을이라는 이유로, 남월남 정부의 2차에 걸친 현장수사는 매우 엄밀히 실시되었고 미군 사령부는 본국 정부에 까지 이 보고서를 이송 하였는데, 미국과 한국의 조사는 물론, 당사자국 남월남의 엄중한 2번의 수사에서도 한국군 마을 진입과 사건발생 시각이 다르고, 사체훼손이 필요이상 심한 점, 해병 1중대 동행 2명의 미군 무전병의 증언, 그리고 마을 주민들의 증언이 서로 다른 점 때문에 한국군 학살로 단정치 못하고, 한국군으로 위장한 베트콩이나 북한군 심리대원들의 소행으로 결론을 내린다.

또한 미 본국으로 이송되어 미국 최고의 씽크탱크 랜드 보고서를 통해 반 한국 활동을 한 미 의회 싸이밍턴 청문회의 도마에 까지 오른 이 사건도 한국군 잔혹 의혹이란 최종 결론을 내리고, 미 국립문서보관소에 이관 시킨다.

 

의혹을 학살로 단정유포하여 국민호도

이렇게 보관된 미군 보고서와 청문회 자료가 32년 만에 공개되자, 고경태와 동조 세력들은 모든 사실이 의혹으로 판명되었음에도 불구, 마치 이 사건이 한국군 학살로 단정된 것처럼 왜곡하여, 보도 유포하는 못된 짓으로 참전장병을 모략하고 국민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뻔뻔스럽게 국가를 상대로 사죄, 배상을 요구하는 천벌 받을 악독한 짓거리를 하고 있다.

 

(5) 하미 마을 학살사건의 진상

베트콩마을인 하미마을의 실체와 한.베평화재단이 조작해 개조한 하미마을 위령비 참배는 패륜행위

한국군을 음해하는 자들이 자랑스럽게 민간인 학살을 주장해 내세우는 꽝남성의 하미 마을은 남월남 정부가 규정한 베트콩 마을(적색마을)이다. 월남 전쟁에서는 민간인이 무조건 양민이 될 수가 없다. 월남전에 참전해 남월남을 지원하였던 아군을 가습 공격해 막대한 피해를 주는 민간인 게릴라 베트콩 마을 소탕작전은 월남전쟁 당시 아주 당연한 것이었다.

총을 겨누고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에서 적으로 간주, 규정된 사람들이나 (남녀노소 민간인까지도), 또 그런 지역들을 공격하는 일은 제네바 협정에 위반되지 않는 지극히 정당한 행위로 전쟁사는 인정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벌이를 위해 시작한 구수정이 자기의 거짓말들을 합리화 하려고 주도해 만든 한베평화재단이 추종자 참배단을 모아 한국군을 사살한 민간인 베트콩 게릴라와 그 동조자들이 살던 과거의 베트콩 마을을 찾아가, 구수정이 조작해 개조한 위령비에 분향하고, 5099명의 한국 젊은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지난날의 적군, 민간인 게릴라와 그 조력자들의 혼백을 추모하는 천인공노할 패륜적 반국가 행위를 보란 듯이 뻔뻔스럽게 자행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이 참으로 통단 할 일이다.

베트콩마을 소탕작전의 당위성

북쪽월맹에서 이어지는 호치민 루트의 연결 목에 있는 중부지방 격전지는 당시 베트콩들이 완전 장악한 무법지대이다. 이를 평정하기 위해 작전책임관할을 맡고 있는 가장 강력한 남월남군 특수 보병사단, 미군, 한국군이 이동 주둔하면서 공유좌표를 사용하여 민간인 게릴라 베트콩 소탕연계 작전을 펼치며 지역을 수복해 나간다.

남월남군이 주도하는 연합군 작전 계획에 따라 한국 청룡부대는 전술책임을 성공리 완수하고 꽝응아이성에서 꽝남성 호이안 지역으로 주둔 이동을 하게 되는데, 하미마을 지역은 남월남군이 전쟁초기부터 월맹 정규군과 지역 베트콩 집단이 아군 공격을 위해 활용하는 베트콩 마을이라 지정하고 수시 소탕 작전을 전개하던 곳이었으나, 한국군은 새로이 정착한 청룡 주둔 부대들의 안전과 경계 유지를 위해, 전술적 교통로에 위치한 하미 마을 등에 유대를 강화 할 대민요원과 정보 병력들을 자주 왕래 시켰다. 그러나 남월남군 예고대로 적군은 하미 마을을 이용, 구정공세를 위한 교두보를 확보하고 남월남군과 연합군 부대를 기습 교란시키자, 작전 관활 책임을 행사하는 남월군의 주도하에 연합군은 상호 연계전술을 실시하며 이 지역 베트콩 소탕 작전을 감행 한다.

 

상기 소탕작전에서 한국군이 거론되는 이유와 과정

이 소탕작전에서 어느 나라군대가 하미 마을을 담당 했는지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으나, 구수정이 그 마을을 찾아가 주민을 부추긴 이후에 만만한 한국군 이름이 거론된 것으로 추측되는데, 그 이유와 과정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한국군은 소탕작전 시, 주민들을 호출해 한곳에 집결 시킨 뒤 주모자들을 선별하는 과정을 통상 거치지만, 남월남군처럼 무차별 사살하고 죽은 사체를 잔인하게 훼손하지는 않는다. 베트콩 기록물 민간인 피해 보고서원문에는 베트콩 양민에 해당되는 민간인 가해자로 한국군이 명시되지는 않았으나 구수정은 음해를 위해 한국군을 거론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기 할 것은 구수정은 아래와 같이 요약한 하미마을 위령비문도 마찬가지지만, 한국군 학살마을이란 곳에 새로 개조해 세운 위령비 마다에, 무슨 연유를 알 수 없는 옛 비문들을 조작 왜곡, 한국군 음해를 위한 비석으로 개조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정론이다. 우선 하미 마을에 새겨졌다가, 주월 대사관을 통한 한국 국방부 측 이의 제기로 지금은 시멘트로 봉해진 주요 시 귀에 구수정이 덧 부친 내용의 요점을 본다.

락과 흥의 자손이 흐엉 산맥을 넘어 이곳에 500년 전 나라를 세웠다. -중략- 적이 몰려와 마을사람들이 고향을 버리고 마을을 떠났다. -중략- 끔찍하여라, 떨어진 목에서 흐르는 피, 거기에는 단두대가 있었고, 교회는 잿더미가 되었고, 숲은 마른 뼈들로 흰색이 되었다. 케롱 해변에는 시체가 쌓였다.” -중략- 다음은 구수정 삽입 부분으로 추정된다.

“1968 이른 봄, 청룡부대 군인들이 갑자기 나타나 양민들을 미친 듯이 흉폭 하게 학살했다. 하미마을 30개의 가옥은 불에 타고 135명 주민의 시체는 산산이 흩어지고 태워졌다. -중략- 더 처참한 것은 그 후에 탱크가 무덤들을 짓뭉갠 것이다. -중략- 통일 후 지난 25년간 고향은 평화롭게 다시 세워지고 -중략- 공산당이 갈 길을 인도하고, 전쟁터의 아픔도 줄었다.”

상기 시 귀가 담겼다는 비문 내용을 과거 월남역사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500년 전에 세운 나라는 1427년의 레 왕조로, 두 군주들의 싸움과 농민 반란이 수없이 일어났는데, 그때 이곳 중부 지방 사람들은 학정에 못 이겨 고향을 많이 떠났고, 그 후 불란서의 영향으로 다낭 주변 지역에 천주교 신자가 급증하면서 응우엔 왕조 초기 1826년부터 근 36년 동안 마을의 신도들을 색출해 단두대로 처형하였고 교회를 태우는 등의 박해가 심했다.

지금도 꽝남성에는 십자가로 만들어진 무덤이 다른 성보다 많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학살 사건을 품은 역사의 비밀에서 무슨 사연의 죽음인지를 알아내기 힘든 게 월남의 수난사다. 위 문구의 이란 표현은 이곳이 과거에도, 당시에도 적의 공격 대상인 숙명적 마을이었던 것 같다.

어느 때 이렇게 마을에서 일어난 미상의 주검을 기리는 비문내용의 말미에 한국군에 대한 상습적 표현을 슬며시 삽입 한 것으로 추정되는 구수정의 모략이 시문을 음미하면 보이는 것이다.

 

하미마을이 베트콩 마을임을 공인하는 반증과 억지

69명의 퐁니 마을 사건 때처럼, 피해 주민들이 난리쳐 시위하지 아니하고 당시의 남월남 정부가 그들을 위해 진상조사도 하지 않았던 당시 135명의 하미 마을 현상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이 마을이 무고하지 않은 민간인 게릴라 요새 베트콩 마을임을 공인하는 당시의 반증인 것이다. 그리고 매일 매일 시시각각 전개되는 소탕 작전의 현장에서 어느 국가에 의해 왜 피해당했는지를 입증 할 국제적 공식 자료나 객관적 증거도 없이 게릴라 마을 사람들의 편파적이고 일방적인 증언과 베트콩 기록으로만, 적색 민간인을 피해 입어서는 안 되는 민간인들이라고, 그리고 한국군에 의한 피해라고 우기는 구수정과 고경태 일당은 사고력이 저능인 수준 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사고력이 정상적인데, 그들이 이런 터무니없는 억지 주장을 지속한다면, 노리는 그들의 속임수는 대한민국을 국제 전범국으로 만들려거나, 5,200개의 투자기업이 진출해 서로 사돈과 친구가 되어있는 한국과 베트남 사이를 이간질 하려는 거짓 평화 실현을 위함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다큐는 계속됩니다, 전우 이외에도 특히 구수정과 동거동락하는 일당들도 읽고 회개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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