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아 버 지..

김주황 6 760 09.26 19:16

                                   아버지..



이브 몽땅의 (고엽)이 잔잔하게 흐르는 창가에 서서

가만히 눈을 감으면

낙엽이 저절로 뎅 그르르 굴러가는 느낌의 낭만의 계절이 오면

항시 마음이 허허하고

뭔가 그리움과 아쉬움 !

미련이 남은 까닭은 그 무엇 때문일까 ?

때로는 가끔

 

모든 남자에게 공허한 느낌은

"아버지"라는 명칭이

가정과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이면서도

어깨 위에 얹은 삶의 무게로

언제나 외로움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 인 것 같다.

그러나 항시

의연한 듯 우뚝 선

"아버지"의 내면을 내자신도 그냥 지나칠 때도 많은 것 같다.

얼마 전 어느 후배가 부친을 여의고 첫마디가

"아버지"의 자리가 그렇게 큰 것인 줄 이제야 깨달았다고 한다.



"아버지"가 없는 그 자리가 생전에는 느끼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아니... 느끼지 못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처가 상상을 초월한 그 이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

한 가정을 꾸려 나가는 것은

 

대개로 어머니로 생각되는 경우가 많다 .

집안의 모든 일과 아이들의 뒷바라지까지

또 남편의 잔심부름까지 끊임없이 무한한

어머니의 사랑으로 이어 저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

이러한 어머니의 순수한 사랑 때문에

"아버지"의 존재 가치가

서운하리 만치 어느 땐 시시하게 느껴질 때도 더러 있지 않나

생각도 든다 .


 

나는 베란다에 지금 막들어오기 시작하는 가을하늘을 보며

지난날을 돌이켜 생각하면  우리들의 "아버지"들은

가정의 기둥으로서 눈앞의 세상을 혜처나갈 노를 잡고

항상 긴장하며 가정을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것이

우리모두 아버지들의 심정일것이다. 

Comments

김주황 09.26 19:24
아마 50대중반 쯤 쓴글인것 같습니다. 정신없이 앞만보고 살아온 지난날들이
10월의 가을이 오면 가끔씩 아스르하게 샐각나고 부질없는 인간사의 욕심들이
허무하다는 생각에 다시한번올려 봅니다.
문성호 09.26 23:18
[@김주황] 김주황 전우님 오랜만 이십니다
중국 역병으로 우리모두 자유럽지 못합니다
건강 하시지요
아버지 이글 허락 없이 미주로 업어갑니다
건강 하십시요
윤영수 09.26 21:19
그렇다 아버지의 자리가 그동안은 안보였지만 현실로 다가오면서 절실하다는 것을
느낀다는 말이다. 당해보지 안거나 체험해보지 않으면 잘 모른다. 이래서 철이 언제드냐는
말이 있는것 같다.전쟁영웅님들 힘내세요 파이팅!!
김계원 09.26 21:50
50대때, 이브몽땅의 감성곡  '고엽'을  감상했던 회상에,  전우님은 심적으로 좀 여유있는 환경이셨던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 시절의  그 샹송이 어슴프레  떠올라 그립기만합니다.물론 영작된 폴른 리브즈로 말이지요^^
김영석 09.26 22:34
아바지라고 가만히  목이 메어 불러보던 내가  어느덧 아버지로 불리더니  이제는 할아버지로 불립니다.
돌이켜 보면,  말없이 월남전선으로 떠남을 시작으로 아버지께 불효가 시작됐습니다.
살아가기 힘든 세상을 핑계삼아 아버지와 거리를 두었으며,
내 식솔을 염려하느라 아버지를 잘 살펴드리지도 못했습니다.
항상 마음속으로 내일은 내일은 뵐 거라고  미루기만 하다가
임종을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가슴속에 담고 살아왔습니다.
이제는 아버지를 곧 뵐 수 있다는 설레임이 있습니다.
가슴속에 머물고 계신 아버지를 불러봅니다.
최명술 09.27 10:23
생전의 아버지를 불러본지도 17년전, 25년전 이곳 아파트에 입주하던날 아버지와 뒷산을 오르면서 겨우 초입인데 힘들다고 못오르시던 아버지, 나는 어제 그산 정상을 다녀 오면서 아버지를 불렀습니다. 아버지...
생각만해도 눈물이 글성이고 불러보면 목이메인 아버지, 내가 젊은시절 일때 아버지는 자식들의 불편을 돕겠다고 도시근처에 땅을 매입해 조상의 묘를 이장해서
돌보시던 아버지,
그런 수고를 자식들은 모르고 묘지관리가 귀찮아 불평하든 자식들, 그 깊은 아버지의 뜻을 어찌 아리오,
묘지 조성때 주변에 식제해놨던 측백나무가 너무자라서
태풍에 넘어지고 그동내 주민들에 불편을주기에 금년4월
모두 제거 하면서 그때 아버지는 이나무가 자라면 아늑한 산소가 될거라며 기뻐하시던 아버지 그모습이 지금도 생생 합니다.  향후 내가 들어갈 자리까지 미리 지정해두셨던 아버지, 나는 그높은 아버지의 뜻을 이제사 좀 이해하지만 내자식들에겐 아버지의 그뜻을 잔소리가 될까봐 아직까지 얘기도 못했답니다. 그때 아버지도 자식들에게 그랬었겠지요. 아버지 묘지 관리인이 어제와오늘 벌초를 하겠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곧 찾아뵙겠습니다.
김주황 전우님 덕분에 아버지에 까지 글을 쓰게 됐군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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