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이 억울한 누명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전진동 5 698 01.18 10:24

오늘 새벽 다음에서 올라온 NEWSIS라는 언론이 있는가 본데 보도를 보니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을 담아낸 작품이라며 헤드라인으로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을 다룬 다큐로'기억의 전쟁'이란 제목으로 영화를 만들어 양민 학살이란 천주에 한을 남길 누명을 씌우며 우리 참전 늙은이들을 욕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몇 해 전 "한겨레 21」의 주월 한국군은「20세기의 광기와 야만 그리고 용병으로, 월남전은 「민족 해방세력과 반역세력 간의 대결」로 정의되고 있다. 반역군이자 침략군이기 때문에 잔혹한 양민 학살도 주저 없이 했을 것이란 도식이 깔려 있다."라는 보도에 대해 채명신 장군께서  생전 「MBC 100분 토론」에 참석하셔서 월남전의 성격과 양민 학살과 관련된 주장에 대한 반박하신 글을 펌 해 옮겨보았습니다.


-중략-

하느님도 양민인지 아닌지 구분 못할 곳이었다,

―요즘 양민 학살 주장이 빈번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월남엔 전략촌이 많습니다. 마을과 마을의 지하는 땅굴로 이어졌고 그 속은 베트콩 들의 주둔지입니다. 한국군이 마을로 들어서면 주민들이 나와 땅속에 아무것도 없다며 안심시킵니다. 무더위의 정글 속을 수색 정찰하고 안전한 마을에 도착했다고 판단한 한국 군들은 휴식을 취하지요. 그러는 사이에 지휘관을 포함한 여러 병사들이 땅굴 속에서 나온 저격병에 의해 쓰러집니다.』 。... 『눈이 돌지 않겠습니까?』


―그 당시 어린아이에게도 총격을 가했다는 주장도 많습니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전쟁터 근처에도 못 가본 사람들입니다. 월남전은 6· 25처럼 밀고 밀리는 전면전이 아닌 국지전이요, 게릴라전이었습니다. 전선이 따로 없었고 피아 구분이 안되어 군인들은 눈뜬 장님 같은 처지일 때가 많았습니다. 심지어 사령관인 나도 두 번이나 테러를 당했지만 구사일생으로 살았습니다. 나에게 폭발물을 숨기고 접근한 여자는 열두세 살 정도 되는 아이였습니다. 사령관도 그 지경이니 장병들에게는 어떤 상황일지 짐작해 보시오. 월남 사람들은 1년에 농사를 3모작 합니다. 그중 3분의 1은 정부 세금, 3분의 1은 월맹군과 베트콩 식량으로, 나머지는 자기들 먹을 식량으로 나눕니다. 어린아이 호주머니 속에서 안전핀이 덜렁거리는 수류탄이 나오질 않나, 부녀자 치마 속에 권총과 소총이 숨겨져 있질 않나…

심지어 그들은 낮에는 월남 정부 공무원이고, 밤이면 베트콩이나 첩자로 활동하기도 했어요. 한 가족이 월남 정부 공무원, 베트콩 첩자, 월맹군 첩자, 민병대 등으로 뒤섞여 살고 있는 집도 있었지요. 하느님도 누가 누군지 분간하기 어려운 전쟁이었어요.

옆의 전우가 여학생으로 위장한 저격병에게 쓰러지면 그쪽으로 총을 갈기지 않겠습니까? 귀엽게 생긴 일곱 살짜리 꼬마가 장난기 어린 동작을 취하면서 달려와 수류탄을 떨구고 도망갑니다. 피하지 못한 전우가 쓰러지면 그쪽으로 총을 쏘지 않겠습니까? 이런 반사적인 보복행위가 이뤄질 수 있는 상황은 어느 전쟁에서나 다 있고 월남전은 가장 심한 곳이었어요. 그렇다고 우리 군이 양민을 무차별 학살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민간인, 특히 아녀자가 전투행위를 했을 경우 이들을 향해 발포하면「양민 학살」로 볼 수 있습니까?

『제네바 협약 제1추가 의정서 37조 1항은 「배신해위의 금지」란 내용입니다. 배신행 위란 「전시에 군인이 민간인이나 비전투원의 지위인 것처럼 위장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베트콩이 민간인 복장으로 위장하고 한국군에 공격을 가하면 엄연한 전쟁법 위반행위입니다. 이 땐 당연히 보복의 권리가 따릅니다. 비록 아녀자라 할지라도 수류탄을 숨기고 접근해 공격 행위를 하면 아녀자이기 이전에 적군이 되는 셈입니다. 그들이 양민이란 건 말도 안 되죠』


-중략-

『전쟁을 모르는 식자라면 「모른다」고 해야지「아는 척」 하고 나오니 세상이 어지러운 겁니다. 한국군은 8년 동안 연병력 32만여 명이 월남 전선에 투입되었습니다. 이 중 5000여 명의 전사는 결코 적은 손실이 아니었습니다. 또, 게릴라전이 항상 이기는 전쟁인 줄 착각하는 것은 영화나 만화만 보았기 때문일 겁니다. 정규 전보다 비정규전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으면 어느 나라나 전부 비정규전 부대만 보유했을 겁니다. 젊은이들을 올바르게 지도해야 할 지식인들이 저런 식으로 글을 쓰고 가르쳐도 존경받는 사회가 되었다는 것이 참담할 뿐입니다. 전쟁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맹물 평화주의자들」이 요즘은 가장 양심적인 인물이 되는 모양이지요』

-중략-

. 『월맹이 통일한 지금, 현지인들이 월맹군에게 당했다고 할 것 같습니까? 한국이 만만하게 보이니까 우리더러 학살했다고 하는 거죠. 게다가 당시에도 피아 구분이 힘들었는데 지금 와서 진상조사를 한다는 게 거의 불가능할 줄 알고서 이런 수작을 부리는 겁니다. 최근 우리나라의 일부 언론과 방송들은 월남전 당시 공산주의자들에 의한 양민 학살은 일체 거론하지 않고 「한국군」이 양민 학살을 했다고 강조합니다. 그게 9000여 명이라고 했지요? 1968년 2월 「후에」 전투에서 월맹군은 공무원, 군인, 경찰, 교사, 종교인, 외국인 등 그야말로 「진짜 양민」 5800여 명을 단 한 번에 처형했어요. 우린 그런 아수라장을 막으러 간 겁니다』


―당시 주월 한국군의 작전개념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제가 근무하는 동안 한국군은 미군과 달리 양민 보호 개념으로「단절 및 섬멸 작전(Cut &Destroy Operation)」을 펼쳤습니다. 6·25 당시 비정규전에 익숙했던 저는 월남전이야말로 비정규전의 전쟁이라 판단하고 물과 고기를 분리하듯 인민들과 게릴라들을 분리하는 작전을 밀고 나갔던 겁니다. 월남전에 참전한 한국 군들은 누구나 사령관이 강조한「100명의 베트콩을 포기하더라도 한 명의 양민을 보호하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을 겁니다. 이 때문에 미군과 마찰도 있었지만 월남 주민들로부터 가장 신뢰받았습니다. 지금 월남에서 한국군에 대한 원성이 잦다고들 하는데 이건 대한민국이 망하기를 원하는 일부 사람들의 거짓말입니다. 월남에서 한국 군에 대한 원성이 1% 라면 한국군에 대한 칭찬이 99%일 겁니다. 1973년에 우리 군대에 철수 명령이 내려졌을 때 자유 월남인들은「다른 나라 군대는 다 떠나도 따이한만은 계속 남아달라」며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까지 벌였어요. 그런 우리더러 「양민 학살을 한 용병」이라는 건 명예훼손 정도가 아니라 매국적 언동입니다.』   -이하 생략-


이와 같은 터무니없는 낭설이 난무하는 것을 미루어보면 우리 참전 늙은이들을 함부로 하는 대하는 것과도 무관하지않고 한몫을 했다고 생각됩니다, 지금의 우리를 대하는 역대 정권부터 이 정권에 이르기까지 정치권의 한 가지 예를 짐작해보더라도, 수당은 박스 건 총량으로 묶어놓고 빨리 죽기만 기다리는 형국입니다, 어찌 우리가 유공자라 하겠습니까. 그리고 더욱 심각한 문제는 적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절박한 전장의 실상을 겪어보지 않은 젊은이들은 물론이려니와 기회주의 위정자들 모두가 사실로 각인하고있다는데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거지 동냥도 서러운데 왜곡된 귀동냥 선입견 철부지 어린 것들에게까지 이런 봉변을 당하고 살아야 하는지 정말이지 억장이 무너집니다.



Comments

정기환 01.18 11:06
전진동 전우님 정말 가슴 아픈 글 입니다.
우리 월남 참전 전우들에게는 제일먼저 명애회복 입니다.
바로 이런 방송이나 신문에서 떠드는 양민학살 문제는 우리 전우들에게
너무나 큰 상처 입니다. 채명신 장군님 말씀같이 어쩔수 없는 상항에 총을 쏘았다고 생각 합니다.
사실은 그 자들은 엄밀하게 따지면 베트공을 돕는 자들이기 때문에 양민이라고 볼수가 없는 자들 입니다.
전진동 01.18 12:16
[@정기환] 예, 말씀에 공감합니다, 그러나 베트남전이라는 특수한 전장의 실상을 모르는 철부지 어린것들보다 이들에게 이런 외곡된  삐뚤어진 정보와 선입견을 심어준 소위 지식인이라고 일컫는 기성세대에 대해 더 분노가 치밉니다.
강기웅 01.18 13:01
너무 상심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런 짓거리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새로 생기는 후발 업체 등이 시선을 끌기위해 나돌아 다니는  "한국군 음해 " 물을 자주 우려 먹습니다. 한국군들이 무고한 양민을 죽이고 싶어도 죽일 수가 없습니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당시의 월남인들은 억울한 피해를 당하면 바로 항의를 하고, 언론은 이를 대서 특필합니다. 콧대 높은 자유월남 정부는 즉시 관련 연합국에게 외교적 조치를 요구 합니다. 해당 한국군은 엄격한 군사 법령을 통해 재판에 회부합니다. 월남 전쟁에서는 비밀이란 전혀 보장되지를 않습니다. 누가 군령을 어기고 자유월남 양민을 학살 할수 있겠습니까?. 한국군이나 미군등의 연합군에 의해 죽거나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베트콩이나 민간인 게릴라, 그리고 그들에게 조력하며 연합군을 적대하는 민간인 조력자들 입니다. 월남 전쟁은 이들을 적으로 규정하고 피해를 공인 하였습니다. 제네바 협정을 위반하며 민간인들에게 무기를 사용해 정규군들을 사살하게 만든 전쟁이 월남전쟁 입니다. 채 사령관님도 현장에 있지를 않아 파악키 어려웠지만, 한국군은 양민을 전혀 학살하지 않았습니다. 베트콩들 사살한 비둘기 김종수 소위가 양민으로 둔갑한 그들의 수작 때문에 15년의 옥고를 치른 사건이 월남전쟁의 현상을  두말 없이 대변 합니다. 전쟁사 연구원 드림
송범명 01.19 08:59
거짓주둥아리는 언젠가는 찟어질것이며 거짓글을쓴 손목아지는 몹쓸병에 걸려서 혼줄이 날거라고 생각합니다
진실을 덮고 얻을것이 얼마나 되는지는 몰라도 천벌은 절대로 막을수는 없을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권상일 01.20 22:11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 다룬,, '기억의 전쟁, 이라고 포털싸이트 다음에 게재되었군요.
왕년 대한민국의 녹을 먹은  전 대법관이 가짜 재판관으로써  가짜 재판하는 장면,
기억의 전쟁  여 주인공으로 출연한  베트남전쟁 당시 8살이였던  응우00 피해를 입었다는  베트남 현지 여성 사진과 함께 올려져 있군요
베트남전참전한국군을  씹은지 20여년 , 그렇게 씹고도 씹을게 있단 말인가. 한국군 양민학살 음해 자해하는 일당들이 적군들이 생산한 기록들을 교차 검증없이  기사를 내 보낸것을,  전쟁을 모르는 여성 영화 감독이  현지  지역을 방문  주민(당시 적군과 동조) 이야기를 듣고 영화한 것이다. 어디 이번 뿐인가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제19회 인디다큐페스티발,
                                  제1회 평창남북 평화영화제.
                                  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등 씹으면 씹을수  록  단물이 나오는가 베트남전참전한국군인들을  씹어대고 있다.
관람객으로부터 후원금을 노리는 행위는 만년을 두고 지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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